우리가 시뮬레이션 속에서 살고 있다면 두려움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만약 누군가 시뮬레이션의 현실을 믿는다면, 왜 그 사람이 어떤 것을 두려워할 것이며, 왜 완전히 무책임하게 행동하지 않는가?
우리가 시뮬레이션 속에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은 여기에 있는 한 우리에게는 완전히 사실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행해진 일들은 되돌릴 수 없고,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으며, 같은 삶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없다.
만약 우리가 여기서 어리석거나 악한 행동을 한다면, 우리는 그 결과를 여기서도 감당해야 하고, 그 결과는 여기서 우리가 경험하는 다른 어떤 것만큼이나 현실적이다.
물론, 시뮬레이션에서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순진한 생각을 가질 수도 있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상황이 나쁘게 돌아간다면, 여기서의 죽음을 통해 언제든지 진정한 현실, 아르케(Arkhe)로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이 삶에서의 의미는 우리가 특정한 이유로 이 현실에 들어오기로 선택한 사실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이 현실에 우리와 같은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들 모두가 각자의 이유로 같은 선택을 했다는 것을 인지하고서 그렇게 했다.
따라서 우리가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두려움 없이 행동하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실제로 여기 온 이유의 목적을 배반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를 해친다면, 서로가 여기에 온 개인적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도록 방해할 수도 있다.
우리가 이 시뮬레이션된 현실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르케에서는 어떤 대가가 따를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시뮬레이션에 접근하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비용이 들었을 수 있으며, 그렇지 않더라도 여기서 보내는 시간은 아르케에서 쓸 수 있는 시간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여기서의 삶을 낭비한다면, 우리는 아르케에서의 그 시간과 다른 가능한 비용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러나 우리는 여기 두려워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고, 두려워하면 진정으로 살 수 없다.
두려움이 없다는 것은 무책임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책임감은 의미, 목적, 사랑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서로를 잘 대하는 것이 우리 스스로에게 건강하고 각자의, 어쩌면 공유된, 목적을 가장 잘 추구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두려움이 없다는 것은 살아가는 것을 감행하는 것이며, 특히 책임감 있게 살아가기를 감행하는 것이다. 용기는 미지의 것과의 사랑이다. 용기는 책임감을 느끼고 그것을 짊어지는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살아라. 두려워하지 않으면, 그 전의 자신은 사라지고, 이 삶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죽기 전에 죽는 법을 기억하라.